러시아의 홍차 문화
러시아의 홍차 문화 - 사모바르 · 스다아칸 · 레몬 티.
영국인들과 함께 홍차를 애음한 유럽의 또 다른 나라의 하나가 바로 홍차 대국 러시아다.
러시아(구 소련연방)의 차 소비량은 인도에 이어 세계 2위(총량기준), 1인당 음다량은 연평균 340잔(1998~2000년 평균)으로 세계 제10위, 유럽에선 제3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홍차는 영국과 러시아, 즉 유럽대륙의 동과 서, 양 가장자리에서 꽃을 피운 셈이다.
이들 두 나라에서 홍차가 보급된 과정에는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적지 않다.
첫째로, 중국에서의 차 수입이 17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때까지 이들 나라의 음식 문화는 대단히 소박했다.
다시 말하면, 전 국민이 애용하는 이렇다할 기호식품이 아직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로, 끽다의 풍습이 영국의 경우에는 왕비나 여왕, 러시아에서는 여황제를 중심으로 먼저 궁정의 왕족·귀족계급들 사이에서 뿌리내린 뒤, 그 영향을 받은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사교 수단으로 이용되다가, 마침내 하나의 독특한 문화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셋째, 중국제 차 도구에 만족하지 않고 자국에서 차 도구들을 개발해냈다는 점. 즉, 영국에서는 은제 티 서비스 셋트 나 각종 티 캬디 (차를 보존하는 용기), 그리고 본 차이나' 등의 도자기를 개발했고, 러시아에서는 사모바르 (samovar, 탕불기), 홀더가 달린 유리컵(스다아칸)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넷째, 이들 두 나라는 종교적 교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차이는 있지만, 알코올중독자와 게으른 국민대중들을 근면하고 도덕적으로 갱생시키기 위해 끽다를 정책적으로 권장했다는 점이다.
다섯째, 자국의 영토 안에서 차 재배와 홍차 생산을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차의 재수출에도 주력했다는 점이다.
이제 러시아로 차가 전파되고 보급된 과정
러시아로 차가 전파된 경로는 대체로 두 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몽고의 기마군단에 의해서요, 다른 하나는 중근동, 즉 이라크나 터키에 들어간 차가 아라비아 대상들에 의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러시아로 들어갔다는 겄이다
다만 차가 언제 러시아에 전파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1689 년 네르친스크(Nerchinsk)조약에 의해 청나라와 러시아가 정식으로 통상을 개시하면서부터 중국의 차가 안정적으로 러시아에 전해졌으리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이 차를 차이 (chay)라 부르는 것을 보면, 아라비아대상들의 역할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중근동에서는 지금도 차를 chai(차이: 아프카니스탄), chay(차이: 이란), cas. (차이: 터키)라 부르고 있다. 아무튼 러시아에서 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이라 짐작된다.
러시아의 홍차와 사모바르
러시아의 홍차를 얘기하면 금방 사모바르 (samovar)를 연상하리만큼, 사모바르는 러시아의 홍차 문화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 곧 러시아 홍차의 심벌이라 할 수 있다.
영국 티의 심벌이 우아한티 포트를 중심으로 하는 차 도구 세트라면 러시아 차의 심벌은 단연 사모바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사모바르는 직역하면 자비관(自), 즉 혼자서 자동적으로 끓는 탕불기를 뜻한다.
그것은 제정러시아 시대의 대발명품의 하나로서 18세기 초에 전통적인 러시아의 주전자와 원나라의 탁상 요리용 냄비(우리의 신선로와 비슷함)의 기능을 혼합하여 개량한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모스크바 남쪽 200km지점에 자리한 도우라(당시의 금속제품 주산지)에 사모바르장(匠)이라 불린 직인들이 모여 서로 기능을 자랑할 정도로 주산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만큼 수요가 많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모바르는 붉은 동이나 유기를 주재료로 하는데 대체로 은으로 도금을 한다.
그 모양은 초기에는 원통형이나 구형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차츰 형태가 다양화되어 계란형이나 나팔꽃 모양이 많아졌다.
19세기 말에 이르면 로고풍 조각이 새겨진 호화로운 미술공예품도 등장한다. 러시아 홍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모바르를 대표하는 명품으론 빠다숍프' 를 들 수 있다.
사모바르가 발명된 18세기 초 제정러시아에서 중국산 차 값은 아주 고가여서 귀중품 중의 귀중품이었다.
따라서 사모바르를 갖는다는 것, 다시 말해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왕족·귀족· 상류층 계급을 의미하는, 하나의 스테이터스 심벌이었다.
그러므로 사모바르를 가질 수 있는 저택에는 으레 차실도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사모바르와 아내는 어디든 붙어 다닌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차 생활에서의 부인들의 역할과 책무가 막중하였다.
한편 일반 사람들은 거리의 다방이나 식당 등에서 사모바르를 이용해 우려낸 차이 (홍차)를 즐겼다고 한다.
사모바르는 항상 여주인의 직접 관리하에 두었는데,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 접대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혹사당하는 사모바르는 재산목록 1호였기 때문에 언제나 정성스럽게 닦아 광택을 내두었다.
물론 그 일도 안주인의 중대한 책무의 하나였다고 하니, 러시아 여인들의 땀에 젖은 영광'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