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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눈 티와 하이 티

부자 연아 아빠 2022. 4. 1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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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눈 티와 하이 티

홍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애프터눈 티이다. 국내 호텔 등에서는 서양 고객들을 위한 애프터눈 티 세트 등이 출시되어 있고.. 이제는 국내 고객들도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영국 사람들이 매우 가정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그러한 가정의 단란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한잔의 홍차' 이다. 홍차는 영국인들의 생활 속에서 진정한 여유와 충족감, 세련된 아름다움을 자아내게 하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하루의 많은 티 타임 가운데도 애프터눈 티는 영국인들의 생활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표현되는 시간이요 공간이다. 애프터눈 티에는 우아한 분위기가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바로 홍차 문화의 유장한 전통이 배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영국 사람들은 생활의 여유와 충족감을 즐기고 있다. 따라서 애프터눈 티는 영국 사람들의 생활 문화를 상징하는 심벌이요, 세련된 미의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애프터눈 티란?

 

애프터눈 티는 점심과 저녁 사이, 즉 4시 무렵에 케이크 등 티 푸드(tea foods)와 함께 마시는 홍차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서 하이 티(hightea)는 육류 등을 곁들여 마시는 홍차,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식사(supper)를 의미하는데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주로 하류 서민층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차 생활이다.

 

하이 티에 견주어 애프터눈 티를 로우 티(low tea)라고도 한다. 제2차세계대전 무렵까지만 해도 영국인들의 식사패턴은 저녁에 정찬(dinner, 하루의 식사 가운데 중심이 되는 식사)을 먹고 낮에는 가볍게 먹는 '런치형'과 점심때 정찬으로 잘 차린 식사를 하는 디너형'으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한다.

 

런치형은 주로 저녁에 호화로운 디너를 즐기는중 · 상류계층들의 식사패턴인데, 그들은 오후 8시경에야 시작되는 디너를 기다리는 사이 4~5시경에 가볍게 애프터눈 티를 즐겼다. 이에 반해 디너형은 주로 일에 쫓기는 일반 서민, 노동자들의 식사패턴인데, 그들은 점심때 잘 차린 정찬을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다고 저녁을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이 티란?

그래서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이면중 · 상류층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시간쯤에 가벼운 식사를 겸한 티를 마시게 되는데 그것을 하이 티라 한다. 그런데 식사를 표현하는 말에 왜 굳이 티라는 말을 덧붙였을까? 상류층의 애프터눈 티(로우 티)를 모방해서 티를 붙였다는 설도 없지 않으나, 그보다는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홍차는 빼놓을 수 없는 음료 내지 식품으로 인식하게 되리 만큼, 그들 도 식사 때는 반드시 홍차를 곁들였기 때문에 '하이 티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보다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서 상류층이 즐기는 애프터눈 티를 로우 티라 부른다는 것은 이미 얘기한 바와 같다. 영어의 low' 라는 낱말은 '낮다'는 뜻 외에도 식품과 함께 쓰이는 경우에는 '영양가가 적은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저간의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애프터눈 티를 시작한 사람은 제7대 베드포드 공작부인 안나 마리아(Anna Maria 7th Duchess of Bedford, 1788-1801)였다.

 

그녀가 언제 애프터눈 티를 시작했는지 정확한 연대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1820~1830년대의 어느 해였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 기간 중에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영국의 식사시간이 크게 바뀌어저녁식사 시간이 8시경으로 늦추어졌는데, 그 사이의 공복을 참기 어려운 공작부인이 중간에 차와 함께 간단한 다식(tea foods)을 들게 되었으리라는 사실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른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A. 카라일도 그 중의 한 사람인데, 그는 1763년에 출간된 그의 자서전에서 '귀부인들은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그의 얘기가 빈말이 아니라면 애프터눈 티의 첫 시작은 18세기의 후반으로 소급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설이 설령 맞는다고 하더라도 상류층 전반으로 확산 · 정착된 것은 1820~1830년대에 이르러서 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아무튼 19세기 초 귀족들의 식생활은 호화로운 아침, 낮에는 하인들의 시중을 받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가벼운 피크닉 풍의 식사, 4시경에는 케이크를 곁들인 애프터눈 티, 8시에 저녁(대체로 정찬만찬)이라고 하는 훗날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상류층의 식사패턴이 거의 형성되어있었다.

 

한편 오후 4시의 애프터눈 티가 중산계급들 사이에 보급된 것은 184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그들이 애프터눈 티를 필요로 한 것은 산업혁명에 의해 직장과 가정이 분리되어 일찍이 귀가하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한편 그 무렵에는 가스등이 발명 보급되어 저녁식사가 늦춰졌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점심과 저녁 사이가 길어져 그 사이에 공복을 달래야 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발전의 여파가 서서히 중산계층에까지 확산된 것도 애프터눈 티의 보급에 한 몫을 하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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