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홍차를 고르는 방법
좋은 홍차를 고르는 방법
(1) 왜 홍차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필요한가
홍차는 대단히 델리키트 한 음료이므로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여 맛있는 차를 스스로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미각(센스)을 세련시키려면, 매일 최소한 5~6잔 정도는 손수 우려 마셔야 한다.
하루에 겨우 1~2잔 정도의 수련(?)으론 홍차의 진미에 접근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홍차의 종류는 줄잡아 5,000종이 넘고, 산지와 채취시기에 따라 저마다 제품의 특징이 다르다.
그럼에도 홍차생산국에서는 무슨 차가 좋다든지, 어떻게 하면 차를 맛있게 낼 수 있다든지를 설명해 주는 홍차 입문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생활 속에는 차가 문자 그대로 일상의 다반사가 되어 있어서 굳이 입문서' 따위를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자국에서 산출되는 차 이외에는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래도록 내려오는 전통에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외국여행을 하거나 비교연구를 하는 경우는 다르지만 반대로 자국에서는 홍차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산지가 다른 여러 가지 홍차를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로 차 수입국인 일본, 미국, 독일인 등이다.
자국에서는 차가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반사적으로호기심이 많아진 탓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부유한나라들이고, 대체로 마시는 양도 적고, 음다 경험도 짧은 라이트 유저(light user)들이다.
라이트 유저란 하루에 차 한두 잔 정도를 마시는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이에 반하여 하루에 5~6잔 이상을 마시는 사람들을 헤비 유저 (heavy user)라 한다.
일반적으로 라이트 유저들은 관심이끌리는 대로 기호를 쉽게 바꾸는 성향이 짙어서 “무슨 차가 맛있다고 하더라”는 풍문에 부하 뇌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간 커피와 와인의 나라로 알려져 온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근자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니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은 자국에선 차가 생산되지 않지만 끽다.의 역사는 비교적 긴 나라이다.
1830년대 중반, 네덜란드와 영국에 차가 들어오자 곧 식민지 미국에도 음다의 습속이 들어왔음은 이미 얘기한 바와 같다.
그들은 처음에는 중국의 녹차와 우롱차(武夷茶)를 본국을 통해 입수했고, 독립전쟁 이후 영국과 차 무역을 중단하게 되자 중 국, 일본 등지에서 녹차를 직수입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영국 홍차의 상징인 '실론 홍차' 를 들여다 소비하는 등 여러 가지 차를 수입하여 마셨다.
세계 최초로 티백, 인스턴트 티, 티 믹스를 개발, 생활 속에 정착시키기도 하였다. 마시는 방법 또한 다양해서 뉴잉글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핫 티보다도 아이스 티를 더 널리 애음하여, 아이스 티가 일종의 국민적 음료가 되었다.
여기에 근자에는 캔 홍차마저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홍차가 범람하다 보니, 어떤 차를 마시는 것이 좋은지를 알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차에 관한 많은 입문서가 발간되어 그것들을 통해 차 문화가 개발되고 육성되어 왔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홍차 탄생국인 중국이나 세계 제일의 생산국인 인도에서 홍차에 관한 좋은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반면 오늘날 홍차의 다경이라 할 수 있는 홍차의 모든 것》(All About Tea, W. H. Ukers)이나 홍차의 낭만》(The Romance of Tea)은 모두 미국에서 출판된 책들이다.
일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여 필자가 모아 읽은 것만도 20여 권에 이른다. 그 중에는 차 문화를 다룬 것들이 있는가 하면 차를 내는 법 과 같은 매뉴얼 북도 적지 않다.
여러 가지 홍차를 가려 마셔야 하는 나라일수록 홍차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홍차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게 되면 상황은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에 대비하는 뜻으로 홍차의 진미를 터득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 몇 가지를 다루어 보려한다.
(2) 보통 홍차와 특수 홍차
오늘날 지구 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홍차는 5,000여 가지로 와인보다도 종류가 많다.
와인의 경우 산지의 것' 약 700종, 그 외에 샤토(chatau, 포도원 별로 라벨을 달리 붙인 와인)가 830종으로 1,530종 정도이니, 홍차가 와인보다 세 배나 종류가 더 많은 셈이다.
만일 와인의 샤토처럼 이름난 다원별로 홍차의 종류를 나눈다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컨대 인도 한 나라만을 보더라도 전체 차 재배 면적 약 42만 ha 중 100 에이커가 넘는 대 다원 만도 13,400개가 넘기 때문이다. 이들 대 다원에서 나오는 홍차를 와인의 샤토처럼 취급한다면 인도산 홍차만도 13,000종이 넘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 세계 다원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홍차의 종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차(녹차 홍차)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필자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시판(市版)되고 있는 홍차의 가짓수가 10여 종을 채 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선택하기 쉬우니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경우는 녹차 홍차 우롱차를 합쳐서 약 400종이 각종 다포(茶鋪)에서 판매되고 있다.
유럽에 비한다면 적지만, 이 또한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우리가 맛있는 홍차를 즐기고자 할 때 제일 먼저 겪게 되는 애로는 저 많은 홍차 중에서 과연 어떤 차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좋은 차의 선별의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좋은 차를 골랐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홍차의 진미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
맥주나 담배, 양주와 같이 포장 판매되는 물품들은 라벨만 보고도, 기왕에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아! 이 양주는 이러한 맛을 가지고 있지!" 하면서 물품을 구입한다.
그러나 홍차(녹차도 같음)는 그렇지가 않다. 홍차는 사온 잎차를 재료로 해서 거기에 손수 물과 열을 가하여 진액을 추출 · 가공하지 않으면 마실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추출법 여하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짐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차(잎)에 물과 열을 가하여 엑기스를 추출하는 일련의 행위를 차를 낸다'
혹은 차를 우려낸다 (行茶, 點茶)고 함은 익히 아는 바와 같거니와,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다시 홍차의 종류와 품질로 돌아가 그에 관해 좀 더 설명해보기로 하겠다.
홍차는 카메리야 · 시넨시스'라 불리는 동백과 상록수의 신선한 새잎을 따서 제다공장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설비나 기법에 따라 발효 · 건조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산지의 기후와 풍토가 차 특유의 맛을 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는 차한 잔을 통해 차 특유의 미를 순간적으로 음미(파악) 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수련)가 필요하다.
홍차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오히려 다양성 그 자체가 홍차의 이미지일 것이다. 이를테면, 차액의 빛깔(水色), 향기, 신선도와 성숙도, 우아함과 소박함 등이 홍차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홍차의 다양성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첫째로 차나무의 품종과 변종이 많고, 둘째로 제다공장이 다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리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좁은 지역 안의 원료(생엽)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홍차는 산지의 기후, 표고(標高), 지질, 지형 등의 자연조건과 그 고장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설비, 기계, 기법 등에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풍토성이 강하여 종류가 많고, 따라서 그 이미지 또한 다양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성을 중시하다가 보면 자연 생산량(공급량)이 한정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균질(均質)의 홍차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어디서나 손쉽게 균질의 차를 안정된 가격으로 공급하는 방법이 마련되었다.
바꿔 말하면 산지 특성'을 내세워 파는 것이 아니고, 일반상품처럼 브랜드(상표)에 의해서 보통 홍차 (ordinary teas) 중에서 소비자가 마음대로 선택하는 오늘날의 마케팅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구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의식주가 해결되고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자신은 타인과는 다르다고 하는 차별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욕구 수준의 고도화에 맞춘 자기만족을 위해서, 또는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 '특별한 것'을 즐기고 싶어 하는 욕망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통 홍차' 와는 다른 '특수 홍차 (speciality teas)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근자에 독일, 일본, 미국, 프랑스 등의 부유한 나라들에서 차츰 뚜렷해지고 있다.
한편 고품질의 차' (quality tea)는 “고품위(특유한 향기가 짙은)의 홍차 생산이 가능한 수확기(quality season)에 만들어진 산품 중에서도 상 F ) 등품 차를 이르는 말인데, 와인의 용어를 빌린다면 Vintage (일조와 적산온도를 기준으로 판단해서 최적년)에 수확 · 제조한 것이다.
그러나 홍차의 고급품은 와인보다 훨씬 한정적이어서 퀄리티 피크 (quality peak)라 불리는 아주 짧은 기간에 채취해서 제조하는 것을 말한다.
퀄리티 피크란 고품위의 홍차 생산이 기대되는 수확기 중 특정 시기의 1~2주간을 일컫는 것으로 차 특유(고유)의 향미가 최대한 발양되는 기간이다.
이는 최적년이 1년을 지칭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훨씬 한정된 기간이다.
그러기에 홍차의 고급품은 매우 귀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홍차의 품질은 다원에서 결정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상조건과 제다기술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기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차 산업이 아직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무튼 까다로운 여건들을 충족시키고 각 고장의 전통 제법(true orthodox제법)에 의해 만들어진 다르질링', '아삼', '키먼', '우바', 딤부라' 등을 특수 홍차(specialitytea)라 부르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다르질링, 키먼, 우바를 따로 “세계 3대 명차라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벌써 옛이야기(적어도 1910년 이전)이고, 지금은 나라마다(중국, 인도, 스리랑카) 지형, 토질, 품종 등이 변하고, 제조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앞서 얘기한 세 지역에서난 차만을 명차라고 단정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