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홍차에 대하여 많이 알아보았으나 홍차를 알아가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홍차를 마시는 방법일 것이다.
홍차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자.
홍차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지금까지 우리는 맛있는 홍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 즉 홍차의 종류와 좋은 홍차를 선별하는 법, 홍차의 등급(형상과 크기)에 맞추어 제대로 된 차를 우려내는 요령, 다구들, 그리고 홍차의 맛을 배가시켜 주는 각종 티 푸드(다식)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위에서 설명한 요령에 따라 차를 우려내기만 하면 절로 맛있는 홍차를 즐길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모든 음식과 마찬가지로 홍차도 마시는 사람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같은 사람이라도 마시는 시간과 장소, 분위기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요차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홍차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보편적인 룰이나 지침(?) 등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나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절에서는 그에 관한 필자의 사견을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맛있는 홍차를 즐기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
좋은 분위기란 한마디로 밝고 정은(靜隱)하며 즐거운 공간과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홍차를 즐기기 위해서 생활공간과 격리된 특별한 장소를 따로 마련할 필요는 없다. 일상생활공간의 일부인 거실의 티 테이블도 좋고 식탁이라도 상관이 없다. 비록 소박한 가구라 할지라도 제자리에 자리하고 있어서 차분한 느낌을 주어 밝은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그만이다.
그러한 분위기는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과 함께 차분한 분위기에 젖어들게 함으로써 한 잔의 차를 통하여 생활의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 일부러 호화로운 가구를 갖춘다거나 고가의 서화를 갖춤으로써 작위적으로 실내를 꾸밀 필요는 없다. 질박하지만 깨끗한 테이블 클로즈로 감싼 다탁(茶卓) 위에 계절감을 일깨워주는 꽃 한 송이가 꽂혀 있다면 다실은 훨씬 밝고 아름다워져 요차의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만일 다탁이 작고 좁다면 화병은 다른 장소에 옮겨놓아도 상관이 없다. 다만 거기 모인 사람들의 시각 미를 돋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또한 가능하다면 창 밖의 뜰이나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택은 거의 모두 성냥갑처럼 쌓아 올린 아파트군의 일색이니, 그걸 바란다는 것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자연을 가까이하는 마음만은 없어서는 안 될 필요요건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탁 위에는 티 포트와 컵, 밀크 피처와 슈가 볼, 케이크와 비스킷 등과 같은 티 푸드, 거기에 소담한 과일바구니가 함께 한다면 더욱 넉넉한 충족감을 느낄 것이다. 이 경우 과일은 무엇이든 상관이 없으나, 한 가지로 채우는 것보다는 두서너 가지를 푸짐하게 채우는 것이 좋다.
여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른다면 분위기는 더욱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은 홍차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준다. 음악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적 요소를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티 타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설령 혼자서 홍차를 마시는 경우라 하더라도 고요한 실내악이 흐른다면 결코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아닌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차를 내고 마시는 주인과 객, 다우(茶友) 상호 간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물론 혼자서 차를 마시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두 사람 이상이 어울리어 차를 마시게 된다. 따라서 차를 내는 주인은 물론 그것을 즐기는 손님도 나름대로의 마음가짐과 매너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본의 다도에서처럼 들어서는 입구로부터 엄격한 격식에 얽매여 딱딱하게 굳어질 필요는 없다. 다만 최소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은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영국의 애프터눈 티에 처음 초청된다는 것은 일종의 우정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잔의 홍차는 그렇게 싹튼 우정을 꽃피우게 하는 자양제 구실을 한다. 그러니 서로 화경(和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다석에서 대화는 그 내용에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흔히 엄격하다고 말하는 일본의 다석에서도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종파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종교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가격을 묻는 것을 제외한다면 세상 잡사를 다 얘기해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요컨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는 화제를 피한다면 어떤 대화든 자유로이 나누어도 좋은 것이다. 만일 지적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다고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딱딱한 화제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튼 홍차를 맛있게 즐기는 비결의 하나는 참석하는 사람들이 상호 배려하는 마음으로 화락(和樂)을 추구하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한 분위기라면 홍차의 맛은 더욱 배가될 것이고, 그때 우리는 삶의 여유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홍차를 즐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길'은 분위기의 조성이든, 접빈하는 마음가짐이든 정성을 쏟고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요차라고 하는 지극히 감성적인 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정신적인 집중이 필요하다. 요컨대 탐미 구심(探求心)이야말로 요차의 기본이요, 요체라 할 것이다.